서울의 비영리, 독립 전시공간의 진화
올해 더욱 확장된 서울 프리즈 필름 프로그램의 큐레이터들은 수도 전역으로 떠오르고 있는 독립 예술 공간에 대해 이야기해본다
올해 더욱 확장된 서울 프리즈 필름 프로그램의 큐레이터들은 수도 전역으로 떠오르고 있는 독립 예술 공간에 대해 이야기해본다
서울에서‘비영리’와‘대안’공간은 어떤 맥락에서 차이를 보이나요?
SSC 독립 공간의 개념은9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고 볼수 있습니다. 국공립과 사립미술관, 그리고 상업화랑의 지배구조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시작된‘대안 공간’은‘물리적인 지속’과‘담론’에 주목하면서 빠르게 변화하는2세대,3세대의 독립 공간들의 다양한공간적 성격 사이에서 기성세대로 편입되기도 했죠.
2010년대 초중반에는 현실적인 제약조건들을 극복하기 위해 신진 작가와 기획자 중심으로, 소위‘신생공간’이라는 아티스트 런 스페이스 혹은 기획자 콜렉티브 스페이스의 형태인 독립공간들이 등장했습니다. 이들의 공통된 기조는 기금 제도에 의존하지 않는 창작과 공간 운영이었습니다.1세대 공간과 달리 이러한 공간의 등장과 쇠퇴는 임대 계약 기간의 주기와 맞물려 있었습니다. 이후에 등장하는독립 공간은 겉으로 비영리 공간처럼 보이지만, 자립적인 공간 운영을 위해 작품판매 혹은 대관으로 프로그램이 일부 운영되는 등 복합적인 성격의 독립공간들이등장했습니다.
KSW 한국 실험 공간의 역사는“대안공간”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1990년대 한국의 외환위기와 그로 인한미술 시장의 침체로 젊은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선보일 기회가 부족해지면서생겨난 것이죠. 이러한 상황에서 젊은 현대 미술가들의 실험과 창작에 초점을 맞춘 대안 공간들이 생겨났습니다. 주지할점은1세대 대안 공간의 성격이 비주류또는 비제도권이라는 두 가지 범주에 걸쳐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이들의 주 요 목표는 글로벌 기준에 부합하는 예술가들의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었죠.
10년 전과 비교했을 때 지금의 서울을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SSC 10년 전 서울은 당시 신진 작가였던80년대생 작가들이 지금의 미술 씬과공간적 성격으로 이어지는 지형을 이뤘습니다.2010년대 초중반에는 작업실이자전시장을 겸한 공간과 콜렉티브가 폭발적으로 늘어났죠. 또한, 지난10년간 동세대 작가들과 함께 동료 의식을 쌓으며 협업한 기획자들이자신의 창작 언어로 기획자의 역할에 대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 독립 기획자들의 입지가 강해졌습니다. 이들의 노력이 지금의 미술계를 형성하고 있습니다.10년간 가시적으로 변한것은 코로나 이후 다른 도시 국가들에 비해 유연하게 작동하고 있던 서울의 미술생태계가 국제적으로 눈에 띄게 성장했다는 점입니다. 특히, 소셜 미디어를 통해작가들이 국제적으로 소개될 수 있는 기회가 확장되었다는 점이 가장 큰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KSW 다른 모든 분야와 마찬가지로 이분야에서도 많은 변화가 있었죠. 많은 비영리 공간이 사라졌고, 일부는 원래의 정체성을 수정했으며, 또 다른 일부는 제도화되었습니다. 그리고2010년 이후‘신생공간’이라는 이름 아래 젊은 큐레이터, 예술가, 디자이너 등이 함께 모여 운영하는공간들이 생겨났지만, 지금은 많이 사라졌습니다. 이는 마치 창작자들이 미술계에서 생존하기 위해 스스로 만들어낸 운동과도 같았습니다. 과거와 달리 오늘날한국 미술계는 많은 주목을 받고 있고, 시장도 커졌으며, 다양한 기회가 생겨나고있습니다. 비영리가 추구하는‘대안’의 의 미도 끊임없이 변화되어 온 만큼, 오늘의조건을 고민하며 끊임없이 재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추세가 어디로 향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SSC 코로나 직후, 그리고 작년의 첫 프리즈 서울을 계기로 해외의 주요 갤러리가 서울에 지점을 열면서 한국의 젊은 작가들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작가들에게 주어지는 확장된 기회는 상업과비상업의 동기화를 경계하거나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쪽으로 나뉘었습니다. 지금같은 과도기에는 각각의 영역이 너무 배타적이지 않으면서 서로를 수용하고, 서울의 미술 생태계가 다양한 스펙트럼 위에 시너지 효과를 내며 함께 발전하고 국제적으로 확장하는 것이 함께 나아갈 수있는 방향이지 않을까 합니다.
KSW KSW앞의 답변에 이어 특히 비영리 분야의 전망을 고민하며 말씀드리자면, 우선 오늘날 비영리와 영리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비영리 부문과 영리 부문은 전략적 차원에서 서로적극적으로 협력하고 포용하고 있습니다.이를 염두에 두고, 오히려 몇 가지 질문으로 답변을 갈음해보고자 합니다.
1.오늘날의 예술 생태계에서‘비영리’,심지어‘대안 공간’이라는 용어가 여전히유효한가?
2.만약 여전히 유효하다면‘비영리’의 기준을 어떻게 설정할 수 있을까?
3.‘비영리’예술 공간은 오늘날의 예술활동의 강력한 동력인 시장 논리를 마주하며, 어떻게 예술 고유의 본질적 가치를지속하고 다룰 수 있는가?
4.오늘날 한국 미술계에서 완전한 비영리가 더 이상 불가능하다면, 대안적/비주류 예술이 취할 수 있는 새롭거나 확장된형태는 무엇인가?
5.‘비영리’라는 이름이 문자 그대로의의미가 아니라 예술 공간의 성격과 정체성, 그리고 그 실천을 의미한다면 새로운‘비영리’의 기준은 어떤 것이라고 할 수하는가?
6.그리고 오늘날의 새로운 기준 아래‘비영리’라는 이름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면, 그 자리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어떤 것이 있을까?
퍼포먼스, 사운드와 같은 특정 매체 중심으로 소개하는 공간이 있나요?
KSW 대안공간 루프(AlternativeSpaceLOOP)는1세대 얼터너티브 스페이스 중하나로, 지금까지 영상 미디어 중심의 작업에 집중해 왔습니다. 윈드밀(Windmill)은 비교적 새롭게 생겨난 공간이지만 퍼포먼스 중심의 프로젝트 공간으로서 정체성을 구축해 나가고 있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공간에 대해 알려주세요.
SSC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PSSarubia)는 비영리 독립 공간으로 오랜 기간 동안 젊은 예술가들을 위한 자체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해 왔습니다. 예술가들에게 적극적으로 힘을 실어주는 몇 안되는 독립 예술 공간 중 하나죠. 전통적인 미디어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에 대해 보다 사려 깊은 접근 방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매년 기증받은 작품을 판매하여 운영할 수 있는 자립 구조를 갖추고 있어요. 올해로 개관10주년을 맞은 아마도예술공간(AmadoArtSpace)은 한국 동시대미술에 대한 비평적 담론이 생산되는주요 독립 공간 중 하나입니다. 또한, 을지로에 위치한 엔에이(N/A)는 현대미술뿐만 아니라 패션, 사진 등 다양한 장르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신인및 젊은 작가들을 소개하는 전시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독특한 산업 경관 한가운데 자리한 전시 공간 자체가 많은 방문객의 이목을 끌죠. 마지막으로 지난해 종로구 부암동에 문을 연 프라이머리 프랙티스(PrimaryPractice)는 큐레이터가 주도하는 공간으로서, 확장된 큐레이토리얼 실천을 바탕으로 전시뿐만 아니라 출판, 프로그램 등 다양한 형태로 그 결과물을 보여주고 있어요.
KSW 아마도 예술공간은 한남동에 위치한 비영리 공간입니다.1970~80년대의전형적인 주거 공간으로 낡은 구조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공간이죠. 동시대 한국 미술에 대한 비판적 담론을 생산하고있고, 일종의 폐허와 같이 낡은 건물의 형식 자체가 예술가들에게 흥미로운 실험의 대상이 되고 있어요. 스페이스 윌링앤딜링(SpaceWillingNDealing)은 젊은 예술가들의 실험과 신구 세대 간의 대화에중점을 두고 비영리 단체로 출발했습니다. 비영리에서 상업적 성격으로 전환한첫 번째 사례라고 할 수 있죠. 뮤지엄헤드(MUSEUMHEAD)는 물리적 현존으로서의전시에 가치를 두며, 동시대 젊은 예술가들의 실험을 옹호하고, 그들의 실천이 지속될 수 있도록 지원합니다. 마지막으로팩토리2(Factory2)는 가장 오래된 독립 예술 공간 중 하나입니다. 이 공간의 전신은 갤러리 팩토리(GalleryFactory)로, 미술뿐만 아니라 디자인, 공예 등 확장된 관점에서 예술을 다루며, 다양한 개인이 모인 커뮤니티 기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있습니다.
대안 공간으로 주목할 만한 시내 주요 지역은 어디인가요?
SSC 1세대 공간은 수도권에 기반을 두고 서울의 홍대, 종로구, 중구 지역에 흩어져 있었습니다.2세대 공간은 예술가와큐레이터가 운영하는 소규모 공간으로,아직 재개발이 일어나지 않아 접근성이 낮고 임대료가 저렴한 곳에서 소규모로운영되고 있습니다. 현재는 방문객이 대중교통으로 편리하게 방문할 수 있는 공간들이 생겨나고 있어요. 주로 을지로와용산구(한남동/이태원), 영등포구, 경복궁주변 등 도심에 위치하고 있죠.
KSW 서울의 비영리 공간은 도시 전역에 흩어져 있어 한 지역만 언급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한 곳을 선택해야 한다면 서촌 지역을 꼽고싶어요.1세대 대안 공간인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가 있고, 팩토리2, 보안1942(통의동 보안여관)등 정체성이 뚜렷하고 특색 있는 공간들이 많아요.
프리즈 필름을 위해 함께 작업하는 장소에 대해 알려주세요.
SSC & KSW 올해 프리즈 필름에서는비영리 및 독립 공간으로 독자적인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는 상징적인 공간 몇곳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운영하는20년 역사의 인사미술공간(IAS)은 관 주도의 독립 공간입니다. 그동안 인사미술공간은 한국 현대미술의 실험적/담론적/대안적 예술 실천의 맥락에서 상징적인 위치를 차지해왔습니다. 보안1942(통의동 보안여관)카페와 서점, 숙박시설, 전시 공간을 포함하는 복합문화공간입니다,1942년부터2005년까지 약60년간 숙박시설로 쓰였습니다. 이러한유산을 이어받아2007년에는 현재의 형태로 재출발했고 복합장르적, 장소특정적, 생활밀착형 예술 등 다양한 예술 활동을 수용하고 선보이고 있습니다. 한남동에 위치한 아마도예술공간은2013년 개관한 비영리예술공간으로서70-80년대 주거공간의 전형적인 형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다양성을 기반으로 미술의 담론과 비평의 활성화를 도모하고자 설립된 공간으로서 기존의 화이트 큐브의 형식을 벗어난 대안적이며, 실험적인 전시 기획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마더오프라인은 카페와 바를 함께 운영하는 복합공간으로, 전시와 행사, 디제이나이트 등 다양하고 실험성 있는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서울을 처음 방문하는 관람객들에게 어떤조언을 해주고 싶으신가요?
KSW 한국 현대미술의 역동성을 감상하려면 지역의 비영리 및 독립 예술 공간을 방문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저는 올해프리즈 필름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동시에 아트페어를 대표해 아르코미술관과 함께 한국의 비영리/독립 공간 목록과 지도를 만드는 데 참여하고 있는데요. 이 목록을 프리즈 위크 동안 프리즈 인터렉티브시티 맵을 통해 해외에서 오신 방문객들과 국내 방문객들이 활기찬 국내 예술 현장을 둘러볼 수 있을 겁니다.
2023프리즈 위크에서 기대되는 프로젝트나 전시가 있나요?
KSW 일민미술관에서 열리는 이시 우드(IssyWood)의 한국 첫 개인전, 학고재갤러리에서 열리는 이우성의 개인전, 프라이머리 프랙티스에서 열리는 양유연의개인전이 특히 기대됩니다.
SSC 1990년대를 대표하는 현대미술 작가 김범의 개인전이 리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데, 그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볼 수있는 흔치 않은 기회입니다.
'It was the way of walking through narrative', ’라는 제목의프리즈 필름2023은 네 개의 비영리 공간:한남동에 위치한아마도예술공간(Amado Art Space)과마더 오프라인(MOTHER Offline), 통의동에 자리한보안1942아트스페이스보안1 (BOAN1942 ART SPACE BOAN 1), 삼청동의인사미술공간(Insa Art Space)에서 진행됩니다. 전시는9월9일까지 열리며, 온라인(www.frieze.com)에서도 만나볼 수있습니다.
This article first appeared in Frieze Week, Seoul 2023 under the headline ‘Independent States'
Main image: Courtesy: BOAN19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