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되기-변종되기의 우한나의 사물들
한국작가 우한나는 2023 프리즈 아티스트 어워드 수상작으로 다양한 천을 이용해 제작한 설치물을 노화하는 여성의 몸으로 표현한다.
한국작가 우한나는 2023 프리즈 아티스트 어워드 수상작으로 다양한 천을 이용해 제작한 설치물을 노화하는 여성의 몸으로 표현한다.
패브릭은 작가 우한나에게 언제나 익숙한 재료이자, 혼란스럽고도 캠피한 생명체(campy creatures)의 자유로운 이야기를 소생시키는 재료이다. 작가 스스로의 다양한 감정이 분투하는 공간이기도 하고 자신의 욕망과 별종적 상상을 끊임없이 표명하게 하는 너그러운 공간이기도 하다. 우한나는 전통적이거나 오거닉한 소재가 아닌 대부분 합성 섬유를 사용한다. 특히 반짝이고 미끈하고 탱탱하고 전자적인 사이키델릭 소재와 얇고 바스락거리는 플라스틱 같은 질감 등이 주로 선택된다. 대체로 천 재료에 대한 편견은 약하거나 파손될 수 있다는 것이지만, 사실상 합성 소재는 매우 질기고 -너무 썩지 않아 오늘날 환경문제의 일부이기도 할 만큼- 지속성이 강하여 미술 작품의 재료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을 뿐 아니라 수많은 색, 질감, 패턴의 선택을 가능하게 하는 셀 수 없는 다양함, 그 자체이기도 하다.
이번 프리즈 서울(2023)에 설치될 〈The Great Ballroom〉(2023)은 거대한 천들을 8m 길이의 홀 천장에 걸어 늘어뜨리는 거대한 설치 작업이다. 〈젖과 꿀〉 시리즈에서 발전한 이 설치로, 노화를 신체의 역동성과 찬란한 변화로 개념화하여 접근하고 있다. 무거운 천은 당연히 중력을 받아 곳곳에서 주름잡힌 U자형으로 쳐지는데 이 모양은 우한나에게 여성의 가슴 이미지와 박쥐가 중첩되는 영역이다. 이 작업은 반짝이는 비즈를 달고 있지만 노동 집약적인 봉제작업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수공예적 디테일보다 천의 늘어지고 주름지는 압도적인 물성이 과장되고 압도적인 상태로 등장하는 도전적인 설치라 할 수 있다. 밤과 어둠, 오늘날 바이러스로 상징되는 조류 동물 박쥐 이미지는 여성성의 집약체인 여성 유방의 흉측하고 그늘진 시간으로 우리의 인식을 안내한다. 그러나 다시 천의 강력한 주름이라는 요소를 통해 우리는 노화와 날개 펼침 사이를 공명하며 그 안에 드리워진 해방적 출구를 가늠하게 된다. 깊은 주름을 드리운 여성들의 젖가슴들이 선언하듯 날개를 펼치는 이 설치는 바로 노화라는 시간 속에 있는 여성 신체들을 위한 직설적이며 과감하고 해방적인 축하연(celebration)이다.
작가가 애초에 바느질 수공과 관련되는 여성 노동과 여성주의 미술의 함의를 강력히 인식하며 천을 집어 든 것은 아니었다. 시작은 오히려 자신이 어릴 적부 터 가지고 놀던 봉제인형의 촉감이나 안락함에서 오는 천 재료에 대한 친밀감으로 인한 것이었다. 그러나, 여성으로 뿌리깊은 여성 혐오의 한국 사회를 목격하고, 시간과 더불어 쇠락하는 여성 신체의 위태로운 조건들에 대한 인식이 또한 커지면서 작업 내부에 여성주의적 관점이 최근 2-3년 사이 보다 적극 개입하기 시작한다. 스윙 음악(박다함 작편곡)을 배 경으로 설치한 작업, 〈SWINGING〉(2018) 은 대걸레와 막대기를 이용하여 그 위에 천과 해골이나 얼굴 모양의 다양한 부속을 걸거나 엮어 마치 아우성 가득한 시위대처럼 포진시키는데, 기울어진 뼈대들은 앙상하지만 분노, 히스테리, 광기, 발언, 선언, 열광, 희열, 이 모든 감정이 역동적으로 공존한다. 가끔 무겁고 으스스하지만 대체로 활기찬 캠프적 표방인 되는 작업 양상은 작가가 성장기와 청년기에 접한 애니메이션, 웹툰, 안티히어로물, Sci-fi 같은 대중문화 내부의 소수자적 상상력, 그러한 이미지들이 보여주는 이종 교차성이나 초현실성, 무시무시한 스토리들의 매혹적 세계 등을 관통하고 있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최근의 우한나의 비정형적 조각 오브제들이 인간과 비인간, 사물간의 관계를 넘나들며 부드럽지만 기괴하고 징그럽지만 동시에 화려하고 사랑스럽지만 절대 고분고분하지만은 않은 이상한 친족들(odd kin)(도 나 해러웨이)처럼 증식하고 진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Feather》(Cylinder, 2022, Seoul)년의 전시에는 여성 영웅의 신체가 활활 타오르는 외계 신화적 상상의 캐릭처처럼 등장한다. 주변에는 기체이자 액체 같고, 촉수적인 오브제들이 등장하는 데이들은 이 여성 영웅의 신체를 다양한 모습으로 번역한 것이다. 비즈와 자수로 화려한 디테일을 더해진 나비, 회전초, 장기, 세포분열을 연상시키는 추상적 모습 을 띄는데 대부분 촉수같은 것을 드러내며 진화한 변종 형태들이다. 북서울 시립 미술관(SeMA Buk Seoul Museum)에 설치 되었던 〈Bag with you_Take Your Shape〉 (2022) 작업에 등장하는 오브제들은 몸 속에 숨겨져 있기 마련인 신체의 장기, 생 식기를 매력적으로 외부 장식물화한 웨어러블 조각들이다. 착용을 통해 사람의 몸에 부착되면 신체는 새로이 연장된다. 즉, 관람객이 이 오브제를 착장하면 사람- 사물 혹은 장기가 밖에 부착된 변종으로 변화한다. 작가는 이것들이 자신의 몸에 대한 어떤 기원이나 바람을 투영한다는 차원에서 종종 몸에 지닐 수 있는 토템적 사물들로 여기기도 한다. 천으로 엮은 그물 안에 담겨 천장에 매달린 혹 덩어리 설치들은 그로테스크하지만 모종의 사랑스러움을 포기하지 않는다. 사실 작가는 여성 전형성으로 폄하될 수 있을 색이나 페미닌한 표현들을 적극적으로 전유하고 향유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최근 사막 에서 굴러다니며 뿌리없이 생존하는 회 전초에서 영감을 받은 《Tumbleweeds》(아 트스페이스 보안2, 2023, 서울)전에는 앙상하지만 강인한 회전초에 화르륵 화염 같이 불타고 뾰족뾰족한 심상을 포개기 도 하고, 블루와 그린, 피빛 퍼플같은 색의 거대한 사이키덱릭 꽃들로 미래-원시 성의 공상과학적 상상을 자극하는 흥미로운 식물되기의 시도하고 있다.
나아가 우리는 우한나의 작업에서 동물, 비인간 신화적 생명체, 내부 장기들을 함의하거나 이미지화하는 작업들에서는 특유의 동물되기의 모드를, 그리고 마지막으로 〈Mating Dance〉 (2022), 데이 시리즈 〈Uneasy Day〉, 〈Punch drunk Day〉, 〈The Day〉 (2002) 같은 평면 퀼팅 작업 들에서는 특유의 운동성을 지닌 지층되기 모드를 확인하게 된다. 절단, 파열, 접합, 함입(invagination), 도약, 이동의 생생 하고 다양한 경합의 리듬을 보여주는 추상적 퀼팅 평면 등에서는 탈영토화된 도주선들이 경합하며 지층을 이루어 나간다. 우한나의 패브릭 조각들은 대체로 마치 세포 분열이나 기관없는 신체(들뢰즈), 신체없는 기관의 모습을 띈다. 어떤 선과 부분을 끊고 또 어떤 선을 붙잡거나 늘이고 증식하고 동시에 뒤엉킨다. 절단된 선과 덩어리들은 결합하지만 도주하는 바늘 운동 혹은 재봉질을 통해 하나의 꿈틀 대는 살벌한 장기 덩어리거나 촉수가 달린 에이리언처럼 탄생한다. 상상하고 천을 만지고 봉제로 이어지는 작업 과정은 작가 스스로가 인간이라는 상태에서 비인간인 장기의 일부, 혹, 고깃덩어리, 동물, 식물, 혹은 가공의 신화적 생명체로의 ‘되기’를 실행하는 엮임(involution)의 과정이다. 작가가 말하는 ‘축적되고 불룩한 덩어리’에 대한 추구는 모종의 여성 되기 - 동물 되기 – 소수자 되기- 변종 되기 사이의 상호 변칙 순환 내에서 생성된다. 우한나의 부드러운 촉감이나 여성적 표현에는 늘 촉수와 가시 같은 길들일 수 없는 뾰족함 이 시각적으로 도사린다. 오브제의 몸체에 수렴된 자르고 찢는 파열적 함의나 공격적인 감정의 분출, 어떤 불화가 소용돌이 치는 과정을 감고 넘어 마침내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무엇인가. 바로 작가가 말하는 ‘부스러기들의 다원성’(plurality of crumbs), 그 세계를 향해 탈주하는 선들의 운동, 그리고 리듬, 그 운율의 생명성을 닮은 야심찬 변종과 별종 신체들의 매혹적인 이야기들이다.
This article first appeared in Frieze Week, Seoul 2023 under the headline 'Becoming Woo Hannah'
Main image: Woo Hannah’s studio, Milk and Honey - 4, 2023. Courtesy: the artist and G Gallery. Photography: Hasisi 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