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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eze Week Seoul 2024

최고은이 프리즈 서울 벽에 남긴 자국

올해 프리즈 서울 아티스트 어워드(Frieze Seoul Artist Award)의 수상자인 최고은 작가는 디지털 시대의 이면에 감춰진 사회 기반 시설과 도시 환경을 구성하는 물질들을 드러내기를 시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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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n Yuli in Frieze Seoul , Frieze Week Magazine | 26 AUG 24

그들을 자국이라 부를 수 있다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자국은 공룡이다. 원시 지구를 지배하던 공룡은 모두 사라졌다. 종 전체의 우울한 종말을 암시하는 흔적이기 때문일까? 박물관에 숭고하게 진열된 공룡 화석을 볼 때마다 나는 무엇이 사라진 후의 자국에 대해 생각하기를 멈출 수 없다. 나는 현실에서 이 생각을 지속한다. 코엑스가 사라진다면, 서울이 폐허 속에 묻힌다면. 스크린 위에서 반짝이는 것이 퇴색한 후에 무엇이 남아 이 도시의 자국이 될까? 

프리즈 서울(Frieze Seoul)에는 공룡 화석 대신 최고은의 작품이 놓여 있다. 그는 중고 백색 가전을 수집해 절단하고 때로는 추상화된 형태로 다시 조립하는 연작을 통해 미술계에 데뷔했다. 그의 대표작 《화이트》 시리즈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레 발생하는 물질의 변색뿐 아니라, 마치 화석과 같은 존재론적 잔존물의 특성을 재현한다. 최고은은 큰 차를 타고 숙련된 고고학자처럼 도시 외곽을 돌며 재료를 수집해 왔다. 그의 활동이 도심에서 멀어질 수록 그가 채취하는 재료는 유행에 뒤쳐진 스타일을 모방하며, 기능을 상실한 정지 상태에 가까워진다. 그러므로 그가 자신의 재료를 기념의 의미를 지닌 계층적 산실이라 부른 것은 우연이 아니다.

Portrait of Goen Choi
〈화이트 홈 월: 웰컴〉과 최고은 작가, 2024. 사진: 하시시박

누구든 서울을 세포막처럼 둘러싼 ‘외곽순환 고속도로’를 따라 달리면 곳곳에 난립한 초국적 자원 재생 업체를 목격하게 된다. 도시에 집중된 인구, 특히 젊은 대학생과 신혼부부의 생애주기, 그리고 변덕스러운 경제 여건에 따라 매일 엄청난 양의 재료가 저마다 다른 상태로 이곳에 밀려든다. 여기서 국적을 알 수 없는 노동자들이 거대한 산을 이룬 냉장고, 에어컨, 세탁기, 식기건조기의 사체를 다른 신흥 아시아 국가나 아프리카로 보내기 위해 해체하고, 분류하고, 적재한다. 보통 그들 뒤로 반도체를 만드는 글로벌 전자 기업의 아파트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서울과 같은 도시에 사는 한, 자정에 주문한 생필품이 다음날 출근 전 문 앞에 배송되는 일은 그다지 낯설지 않다. 사람들은 어떻게 이것이 가능한지보다 종종 파업과 같은 재난으로 이런 일이 실현 불가능할 수 있다는 사실에 더 쉽게 놀란다. 도시의 밤은 방황하는 유령이나 영혼의 시간이 아니라 도시의 낮이 식민화한 물질-인프라의 시간이다. 물론 나는 식민주의에 대해 거의 아는 게 없는 한국인이지만 모든 것이 완벽한 첨단 기술로 시각화된 나의 삶에 더듬을 수 없는 물질적 근거가 있음을 직감하는 순간은 무척 당혹스럽다. 나는 최고은의 작업 역시 이 감각적 실패가 주는 좌절감을 딛고 있으리라 추측한다.  

2019년, 옛 벨기에 영사관을 고쳐 만든 서울시립미술관 분관의 앞뜰에서, 그가 백색 에어컨의 외피를 발라내어 세운 조각은 카페인 음료를 들고 강남대로를 걷는 한낮의 회사원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갔을까? 몇 년이 지나 〈화이트 홈 월〉은 도시의 좁은 혈관과 깊은 주름을 연상시키는 도로망을 따라 코엑스에 도달했다. 매끄럽게 연마된 순수한 ‘흰 벽’은 자기표현의 욕구와 제도의 욕구를 동시에 반영한다. 한편, 그는 비교적 최근에 구리와 황동 파이프 배관을 이용한 새 시리즈를 시작했다. 이 요소는 우리 주위의 어디에나 있으면서 그럼에도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파이프는 건물의 외피를 관통해 벽과 벽, 면과 면을 꿰매듯 잇고 좌대로부터 뻗어나와 조각의 신성함을 공격한다. 또 물과 가스를 운송하는 기능에 무심한 채, 시멘트, 콘크리트, 유리, 우레탄과 같은 물질을 조형의 일부로 끌어들인다. 파이프의 운동성은 가변적이고 드라마틱하다. 파이프를 누르고, 찢고, 쪼개고, 구부리고, 절단하는 힘은 더 이상 인간의 한계에 귀속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더 이상 그것을 ‘신체적’이라 부르지 않는다. 

서울시립미술관에 《화이트》 시리즈가 놓인 2019년, 최고은은 뉴욕에서 개인전을 개최했다. 뉴욕 전시를 기획한 박상미는 월리스 스티븐스(Wallace Stevens)의 시구 “그 집들에는 흰 잠옷이 떠돈다.”를 다음과 같이 고쳐 썼다. “한국의 아파트에는 흰 에어컨이 떠돈다.” 그는 이렇게 감상을 잇는다. “‘wife’를 한국어로 옮긴 ‘아내’는 ‘집 안에 있는 사람’을 뜻한다. (...) 한국 여성이 품은 욕망의 중심에서 넓은 새 아파트, 새 냉장고, 새 에어컨을 엿보는 것은 그다지 특별한 일이 아니다. 다른 사람이 지은 욕망의 집에 살다보면 당신 또한 문득 냉장고를 반으로 자르는 것 외에는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박상미의 관점은 최고은이 서울의 젊은 여성 작가로서 선취하는 지점을 잘 짚는다. 다만 나는 ‘아내’의 어원이 가진 시대착오성과 무관히 이 정서 혹은 욕망이 우리 시대 전반의 일반성에 더 가깝다고 말하고 싶다. 수직으로 서 있는 것을 절단해 수평으로 전환하는 일은 장소와 공간에 대한 새로운 세대의 태도와도 일치한다.

1990년대 이후 한국의 동시대 미술은 광주, 서울, 부산에서 차례로 발생한 비엔날레의 영향과 함께, 주로 장소를 다루는 설치 작품에 의해 번영했다. 그러나 최근 서울의 젊은 작가들 사이에서는 이러한 관습에 반하는 움직임이 감지된다. 그들은 앞선 세대가 축적한 기술적 유산을 활용하면서도 장소에 일시적으로 녹아들기보다 복수의 객체가 공존하는 공간을 보여주려 한다. 물질을 역사나 관계성의 내용으로 취급하는 태도와 결별하는 것이다. 최고은 역시 이 경향을 대표하는 젊은 ‘조각가’다.

큐레이터로서 나는 좋은 작품이 궁극적으로 매체에 관한 동시대의 요구를 갱신한다고 믿는다. 그것이야말로 좋은 작품이 하는 일이다. 이제 이 시대에는 어디든 카메라와 라이다 센서가 접합되어 있기 때문에 누구도 내가 진정 어떤 인간인지 물을 필요가 없다. 이런 차 안, 이런 집, 이런 도시에서 살아가는 경험은 고통스럽고 흥미롭다. 불현듯 조각가가 냉장고를 두 동강 내거나 흰 벽 깊숙이 파이프를 찔러 넣는 것조차 별로 이상하지 않다.

 기고글은 Re-Make/Re-Model’이라는 제목 아래 프리즈 서울 2024 공식 간행물 『프리즈 위크(Frieze Week)』에 처음 실렸다. 번역: 우지혜

추가 정보

프리즈 서울, 코엑스, 2024 9 4 –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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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이미지: 〈화이트 홈 월: 웰컴〉과 최고은 작가, 2024

Yoon Yuli is chief curator of Ilmin Museum of Art, Seoul, Korea. He lives in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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