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엘리자베스의 파라다이스 한조각
서울에 기반을 두고 있는 개인수집가로 배우자와 함께 인천에 위치한 파라다이스 시티 리조트를 위해 발걸음을 멈추게할만한 작품들을 수집하였다. 그녀와 여성작가와 한국 미술시장에 대한 전망에 대해 이야기해본다
서울에 기반을 두고 있는 개인수집가로 배우자와 함께 인천에 위치한 파라다이스 시티 리조트를 위해 발걸음을 멈추게할만한 작품들을 수집하였다. 그녀와 여성작가와 한국 미술시장에 대한 전망에 대해 이야기해본다
미술을 처음 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요? 그것이 오늘날 예술을 즐기고 수집하 는 방식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어릴 때부터 예술과 문화에 관심이 많았 습니다. 제 주변에 항상 작품이 있었던 것 으로 기억해요. 할아버지께서 학창 시절 미술반 활동을 하셨고, 뛰어난 예술적 재 능으로 여러 차례 상을 받으셨어요. 할아 버지의 동창 중에는 장욱진, 이대원, 권옥 연 선생님 등 한국의 저명한 근현대 미술 가들이 계셨죠. 당시에는 몰랐지만 국내외 거장들의 작품을 감상하며 성장했습니다.
저 역시 자연스럽게 예술에 대한 열 정이 피어났죠. 저는 어린 시절을 일본에 서 보냈습니다. 일본에 도착한 지 얼마 지 나지 않아 일본어를 한 마디도 하지 못한 채 유치원에 입학하기도 전에 미술 수업 을 들었죠. 아주 어렸을 때였지만 미술학 원에 처음 발을 내디뎠을 때가 아직도 생 생합니다. 처음 마주하는 다양한 미술 재 료들은 신기하고 매력적으로 다가왔고, 미술은 곧 가장 좋아하고 잘하는 것이 되 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예술을 접할 수 있 는 큰 행운을 누렸기 때문에 예술은 제 삶 의 필수적인 부분이 되었고 제 지식과 취 향을 형성했습니다. 그러던 중 파라다이 스시티가 최고의 ‘아트테인먼트’ 리조트로 개발되면서 저의 관심은 더욱 확대되었습 니다. 훌륭한 예술 작품을 선별하는 안목 이 생겼고 예술을 가까이에서 접하면서 계속 배워 나갔습니다.
처음으로 수집하신 작품은 어떤 것이었나 요? 처음으로 예술 작품을 소유하게 된 과 정에 대해 말씀해 주시겠어요?
1993년인가 1994년에 하와이 여행 중 우 연히 방문한 갤러리에서 앤디 워홀(Andy Warhol)의 작품을 구입했습니다. 그게 제 첫 작품 구입이었어요. 처음 팝아트를 접 하게 된 것은 캐나다에서 중학교 다니던 시절 학교 과제인 ‘팝 아트’ 리서치 프로 젝트였습니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만화나 잡지의 사진, 삽화들이 예술작품 이 될 수 있다는 점이 충격적이었고, 단 순하면서도 선명한 색과 선이 눈길을 끌 었습니다. 특히 로이 리히텐슈타인(Roy Lichtenstein)의 작품에 깊은 인상을 받았 습니다. 이러한 팝 아트의 매력에 빠져 프 린터도 없던 시절 직접 그림도 그려가면 서 꽤 열심히 보고서를 작성했던 기억이 납니다. 10대 시절 내내 용돈을 모아 팝아 트 포스터를 사서 제 방에 걸어 두곤 했어 요. 이 애정이 계속 커져서 제 첫 번째 수 집 작품이 팝아트 작품이 되었죠. 20대의 젊은 여행자였던 저는 판화 밖에 살 수 없 었지만, 이 작품은 지금까지도 제 컬렉션 의 소중한 작품입니다.
파라다이스시티에서는 로버트 인디애 나(Robert Indiana)와 같은 팝 아트 대가들 의 작품은 물론 여러 나라의 개성 있는 팝 아트 작품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언제부터 파라다이스 시티를 배경으로 현 대 미술을 공유할 생각을 하셨나요? 어떤 영감을 받았나요?
‘Design life as art’라는 슬로건에서 알 수 있듯이 파라다이스는 항상 예술과 함께 해왔습니다. 1981년 문을 연 파라다이스 호텔 부산(Paradise Hotel Busan)을 비롯해 파라다이스 호텔 제주(Paradise Hotel Jeju) 인천 올림포스 호텔(Olympos Hotel) 모두 당시 차별화된 현대 미술 작품을 선보였 습니다. 파라다이스 문화재단과 계원학 원(계원예술중고등학교와 대학교)은 문화 예술을 지원하고 젊은 인재를 양성하고 있습니다. 파라다이스는 모든 사업 분야 에서 예술이 녹아 있는 삶을 구현하기 위 하여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파라다이스시티는 이러한 파라다이스 의 비전이 이어져 ‘아트테인먼트’라는 개 념으로 확장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수많은 동시대 예술 작품이 자리한 파라 다이스시티는 현대미술의 높은 문턱을 낮 춰 일상 속에서 예술을 즐길 수 있는 공 간입니다. 미술관에 가지 않아도 수준 높 은 다양한 작품들을 가까이 접할 수 있는 곳. 이곳에 머무르는 것만으로 모든 순간 이 예술이 되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곳. 저희는 이런 비전과 희망을 담아 파라 다이스시티를 기획하였습니다.
파라다이스 시티의 상징적인 소장품 중 하나인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의 그림을 구입하게 된 사연에 대해 말씀해 주시겠어요?
파라다이스와 데미안 허스트와의 인연 은 200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갑니 다. 허스트가 1997년 런던 왕립 아카데 미(RoyalAcademy)에서 열린 전시 《센세 이션: 사치 컬렉션으로부터의 영국 젊은 작가들(Sensation: Young British Artists from the Saatchi Collection)》로 현대 미술 계에 등장한 이후, 저희는 그와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작품 여러 점을 소장하게 되었습니다. 20년 가까이 이어진 이 관계 는 자연스럽게 파라다이스시티 프로젝트 로 이어졌고, 허스트에게 현대미술을 소 개하는 특별한 장소인 아트스페이스를 위한 작품을 부탁하게 되었습니다. 허스 트는 높이 3미터, 너비 9미터로 당시 가 장 큰 도트 페인팅이었던 〈아우러스 사이 아나이드(Aurous Cyanide)〉(2016)를 완성 하여 파라다이스시티를 위한 기념비적인 작품을 만들겠다는 약속을 지켰습니다.
파라다이스 시티에서는 한국 현대미술과 해외 현대미술이 활발하게 교류하고 있습 니다. 앞으로 이 관계가 어떻게 발전할 것 으로 보시나요?
최근 몇 년 동안 영화 〈기생충〉(2019), 드 라마 〈오징어 게임〉(2021), 케이팝 돌풍을 일으킨 방탄소년단(BTS) 등 K 컨텐츠가 전 세계를 사로잡고 있습니다. 여기서 한 발 짝 더 나아가 한국 미술과 미술시장에도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습니다. 프리즈가 아시아 최초의 도시로 서울을 선택한 것 만 봐도 예전과는 달라진 한국의 위상을 느낄 수 있죠. 한국 미술 시장의 규모는 상 대적으로 작지만, 그 역량을 증명해 보이 듯 팬데믹에도 그 활기를 잃지 않았습니 다. 이러한 한국만이 가진 힘과 특색으로 대중문화만큼 한국의 미술도 점차 더 많 은 세계인의 이목을 사로잡으며 그 관심과 수요가 더 높아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실험미술1960–70(Only the Young: Experimental Art in Korea, 1960s–1970s)》 이라는 제목으로 뉴욕 솔로몬 R. 구겐하임 미술관(Solomon R. Guggenheim Museum) 에서 열린 최근 전시는 이러한 높은 관심 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파라다이스시티는 허스트의 〈골든 레 전드(Golden Legend)〉(2014), 쿠사마 야요이 (Yayoi Kusama)의 〈Great Gigantic Pumpkin〉 (2014)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예술가들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박서보, 김창열, 이강소 같은 한국의 거장들과 이가진 같은 젊은 작가들의 작품뿐만 아니라 다양한 국가, 장르, 세대의 작품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저희의 목표는 파라다이스시티가 세계 무 대에서 한국 예술의 위상을 높이는 ‘K style destination’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입니다.
작년에는 김상훈 서울대 교수 등 전문가 들과 협업해 한국 미술시장의 정수를 해 외에 소개하는 영문 보고서 『코리아 아트 마켓 2022(Korea Art Market 2022)』를 발 간하기도 했습니다. 파라다이스는 단순히 미술 작품을 소 개하고 전시하는 것을 넘어 지속적인 연 구 프로그램과 파라다이스 아트랩과 같은 창작 및 제작 지원 사업을 통해 한국 예술 가 육성에 힘쓰고 있습니다. 파라다이스 의 목표는 다양한 패턴과 색감으로 이루 어진 패치워크 퀼트처럼 국내외 예술 작 품이 함께 어우러지는 허브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앞으로도 다양한 지 원과 노력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현재 한국 현대미술계를 어떻게 진단하 시나요? 어떤 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십 니까?
점점 더 많은 여성 작가들이 한국 미술 계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참 여 작가 대부분이 여성이었던 제59회 베 니스 비엔날레에서는 1980년대생인 이미 래와 정금형이 참여했습니다. 또한 아트 팩츠(Artifacts)가 선정한 〈세계 아티스트 Top1000명〉 명단에는 이불, 김수자, 양혜 규가 이름을 올렸습니다.
한국에서는 MZ 세대로 불리는 1980 년에서 2000년 사이에 태어난 젊은 여성 들이 예술과 문화에 가장 많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만의 감성을 중요 하게 여기고 가꾸며, 서로 간의 네트워킹 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이들 은 인스타그램을 통해 아티스트와 직접 소통하고, 해시태그를 사용하여 새로운 아티스트에 대해 알아보고, 관련 정보나 작품 구매 방법을 검색하는 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젊은 세대는 철학적, 예술적 개 념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필요한 현대 미술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즐기고 있 는 것입니다. 예술과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여성 아티스트에 대한 관심도 높아진 것은 분명합니다.
첫 번째 프리즈 서울에 대한 소감은 어땠 나요? 다음 프리즈 서울에 대해 어떤 기대 를 하고 있나요?
서울이 아시아 최초로 프리즈를 개최한다 는 소식이 전해진 순간부터 한국 미술계는 흥분으로 들썩였던 기억이 납니다. 한국 미술 시장의 지속적인 호황과 함께 기대와 우려가 동시에 있었죠. 하지만 프리즈 서 울이 개최되었을 때 ‘역시 프리즈는 프리 즈다!’ 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다른 모든 분 들과 마찬가지로 저도 막연한 기대감보다 는 설레는 마음으로 2회를 기다리고 있습 니다. 첫해에 참여를 망설였던 갤러리 혹 은 혁신보다는 안정을 추구했던 갤러리들 이 더욱 적극적으로 다양하게 프리즈 서울 을 채워 줄 것이라고 기대해 봅니다. 프리 즈 서울이 해를 거듭할수록 한국 미술계에 중요한 한 축으로 자리 잡아 한국 미술을 세계에 알리는 교두보로서 한국 미술 발전 에 큰 역할을 해주기를 바랍니다.
남편인 전필립(Phillip Chun) 씨와 함께 수집을 하고 계십니다. 컬렉션에 대한 의 사 결정은 어떻게 함께 하시나요? 개별 작 품에 대한 서로 다른 입장을 어떻게 조율 하나요?
남편은 다양한 예술분야에 대한 안목을 바 탕으로 본능에 의해 판단하시는 편이고, 저는 자료에 기초하여 심사숙고하는 편입 니다. 저는 아티스트나 작품에 대한 정보 를 수집하여 필립과 공유하고 최종 결정을 내립니다. 그의 직관과 판단력을 전적으로 믿기 때문에 의견 차이는 거의 없습니다.
인천에서 전시하는 작품 이외에 소장하고 있는 다른 작품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이렇게 함께 시간을 보내는 작품에서 다 른 특성을 찾나요?
제 개인 컬렉션은 주로 현대 미술입니다. 에드 루샤(Ed Ruscha) 등 세계적으로 유명 한 작가들의 작품과 이우환, 양혜규 등 한 국에서도 주목할 만한 작가들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수집한 작품들은 개인적인 취향을 반영한 것이 지만, 파라다이스시티에 전시된 작품들은 대부분 파라다이스그룹(Paradise Group)이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파라다이스가 펼쳐 가고자 하는 비전과 철학, 또는 고객들에 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 니다. 말할 필요도 없이 파라다이스시티 에 전시할 작품을 선정할 때 고려해야 할 요소는 더 많습니다. 각 작품은 호텔이라 는 공간의 특성과 인테리어와 조화를 이 루어야 하고, 다양한 연령대와 배경을 가 진 사람 모두가 공감하고 즐길 수 있는 작 품을 선택하기 위하여 그 과정에 더욱 조 심스럽게 접근하고 있습니다.
가장 최근에 구입한 작품과 곧 구입을 고 려하고 있는 작품은 무엇인가요?
최근 몇 년 동안 현대 미술계에서는 뛰 어난 여성 작가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 습니다. 그 중 우연히 엘리자베스 페이튼 (Elizabeth Peyton)의 유화 작품을 보게 되 었는데, 작은 크기에도 불구하고 작품이 뿜어내는 순수한 에너지와 매력에 매료 된 적이 있습니다. 한참 동안 그 앞에 서 서 그림에 완전히 빠져들었던 기억이 납 니다. 그녀의 초상화는 우리가 아는 인물 이지만 항상 그 대상을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평소 작품 구매에 매우 신중한 편인데, 이 작품은 거 의 운명적으로 소장해야 할 것 같았어요. 작가의 이름, 작품의 제목, 컬렉터(저)의 이름이 모두 엘리자베스라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입니다.
저는 또한 유망하지만 과소평가된 아 시아 작가들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최근 예거 르쿨트르(Jaeger-LeCoultre)와의 협업 으로 주목받고 있는 강이연 작가나 이희 준 작가와 같은 젊은 작가들도 주목하고 있는 작가 중에 하나입니다.
수집 여정에서 얻은 가장 중요한 교훈은 무엇인가요?
가장 기본적인 것일 수도 있는데 현장에 답이 있다는 점입니다.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보고 느끼기 위해 열심히 전시나 문 화 공간들을 찾아다니고 현장의 분들과 만나려고 합니다. 국내뿐만 아니라 글로 벌 아트씬과 꾸준히 네트워킹하고, 다양 한 사례를 보고, 듣고, 경험하는 가운데 내 마음에 울림을 주는 작가 혹은 작품을 만나게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작가와 창작 의도, 표현법에 대한 대화를 나누면 서 깊은 성찰과 감명을 주는 작품을 찾아 내기도 하고, 비평가나 큐레이터 등 현장 과 꾸준한 소통을 통해 흐름을 놓치지 않 으려고 노력합니다. 그런 노력이 예술, 비 즈니스, 삶 전반에 대한 저의 관점에 깊이 와 폭을 더해줍니다.
These endeavours add depth and breadth to my perspective on art, business and life in general.
This article first appeared in Frieze Week, Seoul 2023 under the headline ‘Holding Court’
Main image: Damien Hirst, Aurous Cyanide, 2016. Photography: Lee Gyu W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