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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래가 터바인홀에서 조형하는 것들

국제 미술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이미래 작가의 가장 야심 찬 설치 작품이 런던 테이트모던 터바인홀(Turbine Hall at Tate Modern)에서 공개를 앞두고 있는 시점에, 끈적이고 질척이는 내장 같은 그녀의 작업 속 의미를 들춰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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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hanna Hedva in Frieze Seoul , Frieze Week Magazine | 26 AUG 24

어젯밤의 꿈: 작고, 둥근 은색의 무언가가 내 얼굴에 돋아났다. 크기와 모양은 작은 포크 한 개 만한 그것이, 내 오른 눈 밑에서. 메탈릭 소재처럼 보이는 그것을 잡아당기자 빨판 없는 문어의 촉수처럼 부드럽고 넓게 늘어났다. 잡아당길수록 그것은 계속 내 얼굴로부터 나오기 시작했고, 꿈속의 나는 탄력적이고 진주 빛깔을 띄는 그것이 내 배꼽까지 늘어지는 것을 보며 공포에 질림과 동시에 매료되었다. 그리고 나는 불현듯 잠에서 깼다. 본능적으로 나는 손을 들어 뺨을 만져보았고, 현실에선 말끔함을 깨닫고 실망감이 들었다.  

나는 이미래의 작업을 리서치하던 시기에 이 꿈을 꾸었다. 당시 그녀의 블로그에 빠져있었는데, 그곳엔 애니메이션 포르노, 절단된 신체들과, 내가 추측하기론 그릴에 짓눌린 돼지의 발 같아 보이는 이미지들이 있었다. 이미래는 애니매트로닉 기계들과 같은 키네틱(kinetic) 조형물과 움직이고, 휘젓고, 흘리고, 짜내며, 흔들리는 설치물들을 만든다. 재료로는 윤활유, 글리세린, 실리콘, 포슬린 슬립과 기름으로 채워진 펌프, 모터와 PVC 호스를 포함한다. 생동하고 있지만, 어떠한 작업들의 동작은 포박된 무언가처럼 보이기도 한다. 에폭시, 실리콘, 찰흙 등이 직물에 굳혀져 있거나, 천장 혹은 벽에 매달려 있는 일부는 가죽, 생피 혹은 어떤 생물의 벗겨진 내장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명확하게도 이미래의 작업에선 냄새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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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re Lee: Lee: Black Sun》, 2023. 제공: 작가 및 New Museum, 뉴욕, 사진: Dario Lasa

움직이는 그의 작업들을 관찰하는 것은 슬픈 기계를 관찰하는 것과 같은 감상을 불러일으킨다. 자기 자신을 입증하기 위해, 절뚝이는 하찮고, 크기가 무관하게 미미하게 느껴지는 존재들. 일종의 귀여운 애처로움이 있다. 미술사와 직결되는 분명한 레퍼런스들이 있다. 에바 헤세(Eva Hesse), 루이즈 부르주아(Louise Bourgeois), 팀 호킨슨(Tim Hawkinson)을 포함해 추가적으로 센가 넨구디(Senga Nengudi)와 레베카 호른(Rebecca Horn), 한 공간을 점유하여 세계들을 창조해 낸 작가들이 떠오른다. 오시이 마모루(Mamoru Oshii)의 《공각기동대(Ghost in the Shell)》(1995), 츠카모토 신야(Shinya Tsukamoto)의 《철남》(1989)과 같은 영화들과 데이비드 크로넨버그(David Cronenberg)의 바디 호러 필름들의 분위기. 이미래 작가와 H.R. 기거(H.R. Giger)의 베를린 쉰켈 파빌리온에서 개최된 2인전을 몰랐지만, 나는 이미 제임스 카메론(James Cameron)의 《에일리언(Aliens)》(1986)의 한 장면 속으로 뛰어들어 가고 있었다. 선원들이 알의 둥지를 발견하고, 공포에 떨며 위로 올려다보는 장면이었다. 거대하고 빛나는 반투명의 생식관, 마치 공조 덕트처럼 거대한 튜브로부터 여왕 에일리언이 무수히 많은 알을 산란하고 있었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들이 실패하고 붕괴되기를 원한다고 말한다. 조잡하고 야만스러워야 한다고, 마치 초과한 감정들이 그렇듯이 말이다. 티나 킴(Tina Kim) 갤러리 웹사이트에 올라온 이미래의 소개는 이렇게 시작된다. “이미래는 허름하고 우스꽝스럽고 취약해 보이는 키네틱 설치 조각을 만든다.” 이 문장이 인상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그 설명에 부합하지 않은 키네틱 조각물을 떠올려 보려고 할 때이다. 문득 나는 이러한 작업들이 통제와 우아함을 가정할 때 얼마나 인공적이고 강제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지 깨닫는다. 그것들의 광택 나도록 다듬어진 구성물로부터 내겐 단지 노동력과 제작비가 보인다. 원료를 깔끔한 형태로 변형시키는 과정으로서의 공학적 마술과 원시적인 힘을 볼 뿐이란 말이다. 

A portrait of Mire Lee
이미래. 제공: 작가 및 티나킴 갤러리, 뉴욕. 사진: Melissa Schriek

이미래는 2022년에 『프리즈(frieze)』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조각이 어리석다고 말했다. “저는 항상 조각이라는 매체가 가진 완고함, 또 그 어리석음을 좋아했습니다. 변형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죠.” 나는 조각가가 조각이 어리석다고 말하는 것이 좋다. 어리석음과 아름다움 사이의 관계에 대해 사유한다. 그게 어리석음과 추악함 사이의 관계보다 강력한가? 이미래는 뭔가 특이하고 기괴하며 기묘한 것을 만들어낸다. 왜냐하면 그것은 규범적 아름다움의 지배적인 양식에 기대기 때문이다. 만약 순수하고 깨끗하며, 매끄럽고, 기능적인 이상 옆에 병치되지 않고서야 우리는 추악함을 볼 수 있을까? 우리는 언제야 아름다움과 추악함의 이진법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이미래의 작품은 다양한 몸들의 형상을 떠올리게 한다. ‘몸’이 아니라 ‘다수의 몸들’을 일컫는다: 이 작품들은 종양과 같은 성장력, 추잡한 번식력과, 감염 등의 감상을 촉발한다. 여기서 물러나야 할 ‘거부감’에 대해 언급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며, 율리아 크리스테바(Julia Kristeva)의 아브젝시옹(abjection) 개념이 등장할 수밖에 없다. (이미래 작가의 2023년 뉴욕 뉴 뮤지엄(New Museum)의 전시 제목은 크리스테바의 1987년 책 『블랙 썬(Black Sun)』에서 착안했다.) 그의 작업에서 느껴지는 점액질의, 끈적거리며 불룩한 모습들은 실용적 물질주의에 근거해, 몸체의 혐오성을 존재론으로 인식하려는 시도이다. 추방 대신, 그것은 단순한 디폴트 상태로서 선취한다. 몸이 역겹지 않고서야 무엇이겠는가? 극단적인 발상일까? 나에게는 그렇지 않다. 몸이 주는 역겨움으로 우리는 몸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누수, 악취, 부패의 과정 등을 통해 몸의 본질이 드러난다. 이미래의 작업에 대한 다양한 평론들은 주로 그로테스크한 요소에 집중하지만, 내게는 그것을 현현하려는 아름다운 유령이 보인다. 아름다움의 유령이 아름다움의 본질 아니겠는가?

본 기고글은 Loving The Alien이라는 제목으로 프리즈 서울 2024의 공식 간행물 『프리즈 위크(Frieze Week)』에 처음 실렸다. 번역: 류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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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이미지: 이미래, 〈Look, I’m a fountain of filth raving mad with love〉, 2022. 제공: 작가 및 Museum für Moderne Kunst, Frankfurt, 사진: Axel Schneider

Johanna Hedva is the author of the novel On Hell (2018). Their album, The Sun and the Moon, was released in March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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